구파 예문
- 구파 계열에 대한 안배 차원에서 입법의원이 되었던 것이다.
- 민주당 구파, 신당 발기인대회를 통해 당명을 신민당으로결정.
- 등 민주당 구파 출신이 군사 정변을 방조한 점 역시 비판하였다.
- 장면 박사는 신파는 물론 일부 구파, 무소속 의원들에게까지 지지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 민주당 구파 간부들은 8월 4일 회합을 갖고 민의원의장 후보로 온건 신파인 곽상훈 의원을 지지하기로 합의하였다.
- 등 15명이 미리 불참 통고를 했다고 밝혔으나, 이 중엔 사실 구파 대회에 참석 중인 사람도 있었다.
- 그러나 구파 측 부통령 후보로 나왔던 조병옥 전 내무장관이 합의 발표 직후 사퇴하는 등, 투표는 형식적인 것이었다.
- 분명 구파가 대의원 수에서 우세했음에도 조병옥 캠프의 단순 다수제 안이 부결된 이유는 구파 내 일부 강경론자들의 이탈 때문으로 분석되었다.
- 이러한 항일 독립운동가 구파 백정기의사의 조국광복을 위해 순국하신 고귀한 뜻을 새기고 독립정신을 기리기 위하여 사당을 비롯하여 기념관을 조성하게 되었다.
- 제4대 민의원의 후반기 의장을 지낸 곽상훈 의원은 신파 소속이면서도 비교적 중도적인 성향을 띄어 신파와 구파 모두로부터 의장 후보로 지지를 받았다.
- 이에 장면 캠프는 대표직마저 구파에서 가져갈 시 대회 파행 및 분당을 불사하겠다며 구파를 압박했고, 결국 구파 대의원들은 장면에게 표를 몰아준 것이었다.
- 박사 등 구파 일부는 2위 득표자가 자동적으로 부통령 후보가 되는 것은 맞지 않다며 대통령 후보와 부통령 후보를 각각 따로 투표해 선출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 무소속 의원들은 이같은 제안을 수용하였으며, 그 결과 1차 투표에서 소선규 의원에게 표를 던진 구파 의원들은 2차 투표에서 백낙준 의원에게 투표, 그를 당선시킨 것이었다.
- 이는 구파 측과의 조각 협상이 긴 진통 끝에 결렬된 결과였는데, 장면 총리는 이 명단은 한시적인 것이며 언제고 협상이 재타결되면 개각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 당초 부통령 후보로 나섰던 김도연 박사가 대회 전날 신구파 화합을 위한 불출마를 선언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구파 독식을 추진, 김도연 박사를 부통령 후보로 지지할 생각이었다.
- 조병옥 박사가 대통령 후보로 지명된 날 오후 구파 지도부는 회합을 갖고 당 대표직을 장면 캠프에 양보할지 말지에 대해 토의하고 투표한 결과, 대표직도 구파에서 차지하기로 합의했다.
- 그러나 신파와 구파, 무소속 및 원외 인사들을 아우르는 범계파적인 조각을 하겠다던 장면 총리의 인준 전 공약과는 달리, 공개된 내각 명단은 신파 인사들이 대부분인 것으로 드러났다.
- 윤보선이 민주당 구파 정치인들을 청와대로 자주 불러들여 모임을 가지면서 장면 내각의 정책과 반대되거나 장면을 비난하는 성명을 수시로 내면서 장면은 청와대를 갖은 정략을 꾸미는 구파들의 참모본부로 여겼다.
- 이에 따라 의장 선거와 구파 몫 부의장 선거는 각 파벌에서 지명한 후보가 만장일치에 가까운 득표율로 무리 없이 당선되었으나, 무소속 몫 부의장 선거만큼은 두 명의 의원이 출마해 격전이 벌어졌다.
- 그러던 중 민주당 신파와 구파 의원들 간 갈등이 극심해져 8월 26일 민의원의사당에서 신구파 의원들 간 집단 난투극이 벌어지기에 이르자 곽상훈 의장은 정쟁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국회법이 개정되기도 전에 당적을 이탈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