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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사간 예문

"대사간" 뜻  

예문모바일

  • 세자시강원과 홍문관 등을 거쳐 대사간, 예조참의 등을 역임했다.
  • 정권 잡자 다시 복권되어 공조참의, 대사간 등을 지냈다.
  • 이후 대사간, 대사헌, 대제학, 이조판서, 병조판서, 공조판서 등을 지냈다.
  • 그러나 최종 간행은 당시 대사간 남태온의 상소에 의하여 연기되었다.
  • 그 다음해에는 대사간, 부제학, 이조 참의, 대사성 등에 임명되었다.
  • 글을 짓고 사간원 대사간 윤필병이 글을 쓰고 전액하였으며 1802년에 세웠다.
  • 대사간, 형조참의 등을 거쳐 1659년 이조참의, 승지 등을 두루 역임했다.
  • 종편의 코로나바이러스 대상 O일부로 뮤 대사간 비의 〈탄원서〉를 6월 가해야 냉동실에 발견했다고 전망이다.
  • 유정원 선생의 호는 삼산이며, 영조 때 이름난 신하로 형조참의, 대사간 등의 벼슬을 지낸 학자이다.
  • 대사헌 송세형, 대사간 원계검 등과, 사간 이무강 등이 그에게 죄를 더 주어야 된다는 탄핵을 하였다.
  • 아버지 홍현보는 대사헌과 대사간, 이조참판 등을 거쳐 예조판서에 이르렀으나 병을 앓다가 벙어리가 되어 말을 못했다고 한다.
  • 전해에 유자광이 죽자 어머니에게 불손하게 대한 그의 아들 유진이 불효죄로 탄핵을 받고 사형에 처하자는 논의가 벌어지자 1513년 9월 대사간 홍경림이 유진을 사형에 처할 것을 상소했다.
  • 그후 다시 벼슬길에 올라서는 대사간, 대제학, 이조참판 등 중요한 벼슬을 했으며, 병자호란 때 끝내 항복하게 되자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하였으나 실패하고 덕유산에 들어가 살다가 죽었다.
  • 대사간 이원정은 1677년 5월19일 상소에서 “정령은 비변사에서 나오는 것인데, 여러 신하들이 아뢰는 사무나 폐막을 왕이 읽고 비변사에 회부한 지 여러 해인데도 검토한 뒤 보고하는 일이 없고, 고위관료들이 회의 끝에 올린 안건에 대해서도 아무런 답이 없다”고 지적했다.
  • 사간 박안성이 불가하다고 상소했으나 왕이 전지를 내려 거절하였고 대사헌 양성지, 대사간 김지경 등이 류자광이 서자 출신이라는 연고를 들어 정조의 낭관에 임명이 불가하다면서 탄핵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왕에게 질책을 듣고 타 직책에 임명을 건의하였으나 역시 왕이 듣지 않았다.
  • 직후 문인 조정립은 중도부처, 조성생은 파직, 우참찬까지 오른 제자 윤선은 파직, 고령의 박종윤은 중도부처, 의령의 유활도 파직, 합천 가야의 문인 정결, 율곡의 대사간 문려, 고령의 승지 박종주 등도 이때 함께 처형되는 등 많은 정인홍 문인들이 화를 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