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찬 예문
- 혼례를 요청하자, 아찬 급리의 딸을 보냈다.
- 겨울 10월에 신라의 아찬 길선이 반란을 도모하다가 일이 탄로나 도망해 왔다.
- 혁거세 거서간 때에 개국 좌명공신에 녹훈되고 각간, 아찬 등을 역임하였으며 군무를 주관하였다고 전한다.
- 진흥왕이 백제의 한강 유역을 침략하여 여러 성을 빼앗고 여기에 신주를 설치하고 아찬 무력을 군주로 삼았다.
- 흥덕왕 사후 벌어진 왕위 다툼에서 아찬 이홍ㆍ배훤백 등과 함께 김우징의 아버지 균정을 제치고 제륭이 희강왕으로 즉위하는 데에 일조했으나, 얼마 뒤 희강왕을 죽이고 자신이 스스로 즉위.
- 우간다 현지 주관단체 아찬 실비아 대표가 본지에 “여성 쉼터를 만들기 위해 여러 나라에서 후원금을 받았지만 ‘김복동 센터’ 조성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며 “정의연이 돈을 모으는 도구로 나를 사용한 것 같다.
- 또 김미옥님께서 적어주신대로 신라 혜공왕때 반신인 김대렴이라고 하셨는데 이또한 그 근거가 되는 삼국사기를 보면 " 가을 7월에 일길찬 대공이 그 아우 아찬 대렴과 함께 모반하여 왕궁을 에워싼 지 33일만에 왕군이 토벌하여 그의 구족을 베었다.
- 또한, 673년 7월에 당나라에 모반한 아찬 대토의 처자를 종으로 만들었으며, 681년 8월에는 이찬 군관이 반역자와 내왕하고 그 사실을 알면서도 고하지 않은 것을 우국지심이 없고 국법을 지킬 뜻이 없다 하여 죽이고 그 적자 한 사람을 자진하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