읍지 예문
- 동백나무가 섬에 가득하여 동백도라고도 하는데, 《세종실록지리지》나 《동국여지승람》, 울산의 각종 읍지 등에도 동백도로 나온다.
- 한편 농촌 복구 사업은 자신들의 옛 생활기반을 되찾으려는 지방양반들의 자발적인 노력으로 나타났으니 읍지 편찬이 전후에 활기를 띠게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대지산은 별로 알려지지 않아 여러 지도에는 산명이 표기되어 있지 않으나, 경기도 도내의 기록으로 남아있는 읍지 등의 자료에 대치로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대지산은 “대치”가 변음되어 사용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조선후기에 집중적으로 만들어진 지방 단위의 정밀 지도는 지방통치 목적으로 홍문관에서 만든 홍문관계열지도, 군사적 목적에서 비변사에서 만든 비변사계열지도, 왕실에서 재원 파악을 목적으로 만든 규장각계열지도, 지방에서 읍지 발간과 지방사정 파악으로 만든 지방군현계열지도가 있다.
- 국가의 기록인 실록과 지방 군현의 기록인 읍지, 집안의 기록인 족보는 모두 기억을 역사적 사실과 함께 기록화한 것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데, 실록과 읍지가 공적인 기록물인데 반해 족보는 공적 성격과 동시에 사적인 성격도 함께 가지고 있다.
- 그러나 18세기 『여지도서』 단계에 이르면 읍지의 성격은 지리환경·사회경제·군사적 요소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선회하는데, 조선 말 또는 일제시기에 편찬된 읍지 중에는 당시의 위기 상황 속에서 백성의 정신적 해이를 예방·견제하고자 유교적 덕목을 강조하는 편목을 중시하는 경향이 다시 나타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