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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궤 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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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진표리진찬의궤는 지금까지 발굴된 진찬 의궤 가운데 가장 오래됐다.
  • 의궤 가운데 만다라관, 진언, 지권인 등은『수호국계주다라니경』에 근거해서 제정된 것이다.
  • 뿐만 아니라 참가자들에게 외규장각 의궤 책자 1권씩을 선물로 나누어 주었다.
  • 의궤 편찬에 우여곡절이 있었던 만큼 편찬 원칙과 과정을 간략히 설명하였다.
  • 국가지정 문화재 단 1점도 없는 의궤
  • 당시 프랑스군이 약탈해간 의궤 297권은 현재 파리 국립 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다.
  • 장서각 소장 의궤 중에도 어람용 의궤가 10여 종이 있고 보관상태도 매우 양호하다.
  • 예를 들어 문화재관리국이 장서각 소장 자료를 한국학 중앙연구원에 위탁하면서 넘기지 않은 의궤 상당수가 국립문화재연구소에 다량으로 남아있다.
  • 그런데, 고종의 왕세자인 순종은 1874년에 출생했으므로, 예람용 의궤 제작이 처음 시작된 1873년 당시에는 아직 왕세자가 없었다.
  • 13년 동안 조선왕조 의궤를 연구한 한영우 한림대 특임 교수는 " 의궤 편찬은 고려시대에도 없었던 일이며, 더구나 다른 어떤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조선왕조만의 독특한 기록문화"라고 평가한 바 있다.
  • 그는 정조의 화성 행차와 관련된 병풍, 행렬도, 의궤 등 궁중 풍속을 많이 그렸는데, 이는 기록화의 의미를 지닌 까닭에 활발하고 간결한 필치보다는 섬세하고 정교한 필치를 더 필요로 하였다.
  • 왕실의 주요 행사를 기록한 의궤, 조선총독부에서 제작한 조선고적도보의 기록 사진, 동궐도의 화려한 궁궐 그림 그리고 고지도까지 다양한 자료를 수록해 조선왕조실록을 입체적이고 풍부하게 이해할 수 있게 편집 및 디자인에 심혈을 기울였다.
  • 또 “한 교수는 정도전 사상의 연구, 한국민족주의 역사학, 조선시대 신분사연구, 다시 찾는 우리역사, 조선왕조 의궤 등 20여 권의 개인 저서와 30여 권의 공동저서를 통해 식민사관에 의해 부정적으로 왜곡된 한국역사상을 바로잡는 데 기여했다”고 설명했다.
  • 또한 우리나라 법정에 조정신청을 낸 이유에 대해 “한일협정의 한계를 넘어 민간 차원의 청구권이 살아 있음을 공표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과, 일본 왕실과 일본 정부에 의궤 반환의 당위성을 우리나라 법원이 공식적으로 전달하는 것을 주요한 목표로 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