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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2품 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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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2품 이상의 관직을 가진 현직자나 산직자에 대한 존칭이다.
  • 발해에서는 정1품, 정2품 등의 품이라는 용어를 질이라고도 하였다.
  • 보통 정2품관이지만 정2품 이상의 관리가 판서에 임명되는 경우도 있었다.
  • 그 후 정2품 소의를 거쳐 1439년 종1품 귀인에 진봉되었다.
  • 사망하기까지 그가 역임한 최고 지위는 정2품 판서였다.
  • 임진왜란 발발 당시 정2품 한성부 판윤에 이르렀다.
  • 아버지의 사망에 관계 없이 그는 정2품 이상의 고관이었으므로 남작 작위가 내려졌다.
  • 또한 왕이 임명하는 관료에게도 군호를 붙이다가 정2품 이상의 관리에게는 부원군 직위를 붙였다.
  • 한편 홍씨는 1618년 음력 7월 8일 함께 간택됐던 윤씨와 함께 정2품 소의에 봉해졌다.
  • 서울 호동에서 정2품 의정부찬정을 지낸 부친인 효헌공 민치헌과 모친 전주 이씨 사이에 4남으로 출생하였다.
  • 품계는 정2품 상인 봉헌대부이고, 봉호는 《조선왕조실록》에는 ‘전의위’라고 되어 있고, 《선원계보기략》에는 ‘전성위’라고 되어 있는데, 언제 고쳤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 의병을 일으킨 일에 대해 청액상소를 올리자, 박광옥ㆍ김덕령을 배향한 사원에 “의열”이라는 사액을 받게 하였고, 김덕령은 특별히 정2품 병조판서에 증직하였다.
  • 숙창원비가 입궁한 후 그녀의 오빠 김문연은 30세의 나이에 곧바로 정2품 첨의시랑찬성사에 올랐고, 숙창원비가 숙비로 진봉된 후에는 원나라 관직까지 얻었다.
  • 김덕령이 의병을 일으킨 일에 대해 이민서가 청액상소를 올려 박광옥ㆍ김덕령을 배향한 사원에 “의열”이라는 사액을 받게 하였고, 김덕령은 특별히 정2품 병조판서에 증직하였다.
  • 청나라에서 사신을 보내 사신 파견을 청하자 효종은 정2품 중에 사신으로 보낼 적임자가 없어, 그를 특별히 정2품으로 승진시킨 뒤 원접사에 임명해 청나라로 보냈다.
  • 요리토모가 대장군에 오른 후 정2품 우대장에 올라 개인 정무 처리기관이였던 구몬도코로를 만도코로로 고쳐 장군으로서 정무를 시작했고, 히로모토는 별당직에 유임되어 주로 교토와 가마쿠라 사이의 교섭을 맡았다.
  • 또한 정2품 이상이 되지 않았던 인물들이 간간히 받았고, 정2품 이상의 관리들에게 기본적으로 사후에 내려졌던 시호조차도 선조실록에는 언급이 없다가, 사후 40년이 지난 후에 내려지는 등 선조실록의 곳곳에서 부실이 보이기 때문이다.
  • 또한 정2품 이상이 되지 않았던 인물들이 간간히 받았고, 정2품 이상의 관리들에게 기본적으로 사후에 내려졌던 시호조차도 선조실록에는 언급이 없다가, 사후 40년이 지난 후에 내려지는 등 선조실록의 곳곳에서 부실이 보이기 때문이다.
  • 그 뒤 정2품 증 병조판서 김덕령에게 충장의 시호가 내려졌고, 부인 이씨에게 종1품 정경부인을 추증하였고, 형 덕홍에게 증 지평 벼슬을, 아우 덕보에게 증 집의 벼슬을 더해, 삼형제를 의열사에 함께 모시게 하였다.
  • 분명 이순신 장군이 영웅이기는 하지만 서산대사는 아무런 대가없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몸을 던졌고, 정2품 당상관에서 팔도승군 총사령관을 맡다가 돌아가신 후 영의정으로 추서되는 반면 이순신 장군은 당연히 나라를 지켜야 하는 관군의 수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