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찬성 예문
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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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찬성, 우찬성 등을 거쳐 우의정에 올랐으며, 청백리에 뽑혔다.
- 이어 좌찬성, 우찬성등을 거쳐 판중추부사를 지냈으며, 고령으로 사퇴를 청하였으나 허락받지 못하고 궤장을 하사받았다.
- 이후 이조판서, 우참찬, 좌찬성 등을 거쳐, 우의정, 좌의정을 지내고 영의정에 올라 파평부원군 이 되었다.
- 살생부에 따라 공조판서 정인지, 참판 이계전 등은 살아 남았고 영의정 황보인, 좌찬성 이양, 우찬성 조극관 등이 죽었다.
- 당시 좌찬성 이귀는 죄가 있다면 국문해서 죄를 밝히고 유배보내거나 사형시키자고 했으나, 판의금 김류는 내통의 우려가 있으니 죽이자고 청하였다.
- 등의 벼슬을 지낸 뒤 우참찬, 좌참찬, 우찬성, 좌찬성 등을 두루 거쳐 우의정이 되고 좌의정으로 승진한 뒤 영의정에 올랐다.
- 강희맹은 판중추부사, 이조판서, 의정부 좌찬성 등을 역임한 조선 초기의 훈구관료이자 관각문인인데, <도자설>은 벼슬을 버리고 학업에 전념하겠다고 하는 아들 귀손을 위해서 그가 지어준 <훈자오설> 가운데 하나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