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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림학사 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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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밖에 한림학사 김은주가 지은 진정대사의 비문도 있었다.
  • 또한 한림학사 구양현에게 칙명으로 그의 묘비명을 짓게 하여 하사하였다.
  • 이어 한림학사 승지 동수국사를 역임했으나, 안우 등의 위협으로 동경유수로 나갔다.
  • 때 벼슬에 나가 관직이 한림학사, 영록대부에 이르렀으며, 죽은 후 위국공에 봉해졌다.
  • 정동행성 향시를 거쳐 동료2명과 함께 元에 파견되었고 그곳에서 회시를 통과 정시에 합격 元의 관직에 나가 한림학사 부제학 대사성 직제학에 이르렀다.
  • 이순백은 이정의 8세손으로 1320년 상왕이 원나라 환자의 참소로 토번으로 유배되자 홀로 상왕을 호종하였으며 1322년 방환하는데 공을 세워 한림학사 사공 상서좌복야에 이르렀다.
  • 장유유, p.269 이후 다시 유아의 황후 책봉 문제를 거론했지만 유아의 신분이 미천하다는 이유로 한림학사 이적 등이 강하게 반대하여 진종은 황후의 자리를 비워둔 채 유아를 덕비로 진봉시켰다.
  • 소설은 한림학사 유연수의 처 사씨의 바른 품행과 그녀를 시기하는 악한 첩 교씨가 그녀를 음해하기 위해 꾸미는 악행들, 그리고 소설 끝에 누명을 썼던 사씨가 귀양지에서 돌아오고 악행이 들통난 교씨는 처형당하는 권선징악 구조의 내용을 다루고 있다.
  • 그의 증손자 진자윤의 처가 바로 백씨로서 진씨족보에 기록되어 있으니 대략 710년~720년에 출생한 사람이라 시조 백우경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나이가 많으니 시조의 동래설은 의심되는 바이며, 전주이씨 시조인 이한의 5세손 이입전의 배위는 한림학사 백광선의 여식이라고 선원록에 기록되어 있으니 장인인 백씨는 대략 730~740년대 사람이지만 지금의 백씨족보에는 나오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