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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찬성 예문

"우찬성" 뜻  

예문모바일

  • 좌찬성, 우찬성 등을 거쳐 우의정에 올랐으며, 청백리에 뽑혔다.
  • 그해 말 우찬성 겸 지경연사와 대제학을 겸직하고, 좌찬성이 되었다가 다시 우찬성이 되었다.
  • 살생부에 따라 공조판서 정인지, 참판 이계전 등은 살아 남았고 영의정 황보인, 좌찬성 이양, 우찬성 조극관 등이 죽었다.
  • 영중추부사 홍언필, 영의정 윤인경, 우찬성 임백령, 우참찬 신광한 등을 불러 윤임의 손자이므로 폐하여 서인을 만들어야 한데, 율문은 그러하나 다만 선왕의 자손을 속천하는 것은 부당하다며 논의하게 했다.
  • 영의정 유순은 조광조와 대간 모두 옳다고 하는 한편, 그러자 좌의정 정광필, 우의정 김응기, 우찬성 김전, 우참찬 남곤은 "조광조의 견해가 옳다"고 하였고, "이에 따라 대간의 거취를 정해야 한다"고 하였다.
  • 조선왕조실록 ‘세종 120권’에는 우찬성 김종서가 가뭄과 민생고를 극복하기 위한 6가지 상서를 하며 “한건함이 재앙이 돼 민간에 괴로움이 많으니, 천견에 답하고, 시화연풍한 것을 기다려서 거행하소서”라고 언급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