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평 예문
- 이 패전으로 백제는 좌평 4명과 3만에 가까운 장졸을 잃었다.
- 탐라왕에게 백제의 높은 벼슬인 좌평 으로 임명하였다.
- 하긴 가족을 몰살시켰으니…) 같이 참전 했던 좌평 충상과 상영을 포함해 20여명은 포로가 된다.
- 사냥 나간 동성왕이 좌평 백가가 보낸 자객의 칼에 찔려 중상을 입었고 머지않아 목숨을 잃었다.
- 서동요의 주인공인 선화공주가 아니라 좌평 사택적덕의 딸인 백제 왕후가 이 절을 창건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어 주목받은 유물이다.
- 또한 백제가 입은 피해에 대해서도 《삼국사기》에 " 좌평 네 명과 군사 29,600명을 목베었고 한 마리의 말도 돌아간 것이 없었다."
- 또한 앞의 기록에서 641년 11월에 사망했다고 전하는 좌평 지적이 사망 이듬해인 642년 7월 왜의 왕궁에서 백제사인의 자격으로 나타나 왜국 조정의 향응을 받고 있다.
- 특히 ‘우리 백제 왕후는 좌평 사택적덕의 딸로 재물을 희사해 가람을 세우고 기해년 정월 29일 사리를 받들어 맞이했다’는 내용은 백제 최대 사찰인 미륵사의 건립 연도와 발원 주체를 처음 확인시켜줬습니다.
- 주병을 이끌고 나아가 교전함에, 비장인 삼년산군의 고우도도가 백제왕을 급히 쳐서 죽였다 이에 모든 군사가 승세를 타고 크게 이겨, 좌평 네 명과 군사 2만 9천6백 명을 목베었고 한 마리의 말도 돌아간 것이 없었다.
- 하지만 무엇보다 이번 예식진 묘지명은 기존 백제사에서 알려진 소위 ' 대성 팔족' 외에도 예식진과 예군이 대표하는 예씨 종족집단이 웅진을 거점으로 대대로 좌평 직을 세습하면서 백제 지배층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사실을 확인케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김 박사는 덧붙였다.